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 민족 (문단 편집) === 비판적 견해 === 이 시기에 '바다 민족'이라고 불리는 다수의 해적 집단들이 활동했다는 사실 자체는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에 근거할 수 있지만, 이들이 고대 지중해 문화의 단절이나 후기 청동기 붕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가설은 지나치게 실험적이며, 고대 유럽사의 다른 요인을 배제한 극단적인 가설이라는 비판이다. 실제 주류 학계에서는 비판적 견해가 적극적 견해보다 더 우세한데, 이들의 영향력을 고증하고 연구하기에는 사료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장 검증된 내용만을 싣는 세계사 교과서 등지에서는 바다 민족의 존재조차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교과서에서는 분량의 한계로 모든 서술이 다 들어갈 수 없으며 중요도가 떨어지는 서술은 빠진다. 그리고 세계사 교과서는 지나치게 낡은 학설들만 실어 놓기 때문에 오류가 많다는 지적을 학계에서도 꾸준히 받고 있다.] * 첫 번째는 이집트 측이 말하는 '해양 민족들'의 습격이 비단 이 시기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원전 16세기 람세스 2세 시기부터 해양 민족들의 습격이 빈번했으며,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3세]]가 해양 민족에 대항하여 함대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수필루리우마 2세 때는 그러한 해적들과 싸워 이기기까지 했다.[* 애초에 바다 민족으로 인해 교역이 단절되었다고 설명하는데 그럼 그 전에는 교역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그 얘기는 교역로에서 진을 치든 어쩌든 강도질하려는 작자도 드글드글하다는 의미다.] 이들의 역사적인 의의를 상고하기 위해 이집트의 기록을 인용하는 것은 결과에 원인을 취사선택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 두 번째로 이들은 단일 민족으로 묶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족 간의 집단으로 분류하기에도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개별적 사건의 주체들이었다. 출신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킬라인들이 기원전 13세기부터 소빙하기로 인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동부 지중해 지역을 약탈해 히타이트의 식량 보급로를 위협했고, 아나톨리아 남서쪽 지역의 루카와 바다 건너 아히야와 사람들(미케네 멸망으로 떠나온 사람들이라 추측됨)도 해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루카의 해안은 기원전 21세기부터 해적들의 도피처였다는 이집트의 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 지중해의 약탈 행위는 전(全) 오리엔트적인 현상이었고, 또 해안가에만 한정된 현상도 아니었다. * 특히 기원전 13세기에서 기원전 12세기경 파괴된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은 파괴 원인과 주체가 불명확하다. 바다 민족의 침입 근거로 알려졌던 도시들 중 일부는 실제로는 바다 민족에 대한 최종 기록이 기원전 1177년 이후나, 바다 민족의 최초 침공 기록 이전에 파괴된 것으로 보이고, 일부 도시들은 지진에 의한 자연적인 파괴로 버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외부 침입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되어 줄 유물이 너무 부족하다. * 청동기 국가들의 몰락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실제로는 수 세기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바다 민족에 의한 청동기 멸망설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청동기의 몰락이 바다 민족의 등장과 동시에 시작되어야 하고, 바다 민족의 침략을 받지 않은 도시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야 하는데, 기존의 이론으로는 바다 민족이 사라진 이후에도 다른 청동기 국가들이 몰락한 원인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호주]]의 고대 근동사학자인 트레버 브라이스(Trevor Bryce)는 이러한 '정체불명의 해양 민족들에 의한 지중해 청동기 문명의 멸망' 가설을 반대한다. 그는 이를 근동 각지에서 발생한 '민족 이동'이라는 큰 틀의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이동과 약탈은 당시 후기 청동기 세계의 재앙을 가져온 원인이 아니라, 반대로 혼란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상황과 소빙하기로 인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으려던 결과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해양 민족'들이 청동기 시대를 마감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가뭄과 이미 저물어 가던 청동기 시대의 영향을 받아 '민족 이동'을 하게 된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후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미 람세스 2세 이전부터 [[시리아]]와 [[소아시아]] 지역은 가뭄이 시작되어 있었다. 람세스 2세 치세 때는 히타이트에서 빈번한 가뭄으로 인해 이집트에 곡물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람세스 2세도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의 생명은 자신에게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렇게 각지에서 흩어져 나온 해양 민족이라고 여겨지는 집단들은 [[터키]]가 아닌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팔레스타인]] 등 각기 다른 곳에 정착했다. 이는 기원전 3세기 "켈트족 대이동", 기원후 3세기 "게르만족 대이동", 8세기 "바이킹족 대이동"과도 유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고고학자인 Eric H. Cline 교수는 청동기 국가들의 몰락은 어느 한 가지의 드라마틱한 사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청동기의 쇠퇴에 있어서 바다 민족의 이동은 단지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이며, 근동의 청동기 국가들의 몰락은 전쟁이나 기후 변화, 자연 재해, 전염병 등의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aq4G-7v-_xI|#]][[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143/read/4829419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